+ 찬미 예수님
저는 보스톤 성당 곽 영숙 로사 입니다.
2003년 두 번째로 저의 미국 생활이 시작되면서부터 저는 주님 앞에서 넘어지고 일어서는 연속의 영적 목마름의 삶이었습니다. 그것을 통하여 지난 날의 제 삶이 얼마나 큰 행복과 감사의 삶이었는지 주님께 오늘 다시 한번 고백합니다.
지난 해 처음으로 성령대회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처음으로 성령대회를 참석하고 집으로 돌아 왔을 때 오랫동안 방 한쪽에 놓여져 있던 한 장의 CD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 CD를 통해 저에게 다가 오는 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령 기도회에 아무런 말 한 마디 없이 나가 앉아있는 것 만으로도 주님 당신께 대한 봉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주님의 일을 피하고 있었기에 늘 죄송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 저는 주님께 제가 앞으로 1년간 기도회에 빠지지 않고 나가겠습니다. 어떻게 저와 저의 가정을 변화시켜 주실는지 앞으로의 1년을 당신께 봉헌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변화는 너무 빨리 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목요기도회 날 회장님이 봉사자 세미나가 있다고 말씀하셨고, 저는 참석하기 원했지만 시간과 봉사자라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주위 분에게 봉사자 세미나를 다녀오면 봉사자를 꼭 해야 하는 것인지 물었고, 그분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고 하여 저는 봉사자를 뺀 일반 성령 세미나로 생각 하기로 하고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첫 시작 미사부터 주님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를 이렇게 부르셨다는 생각이 들자 쏟아지는 눈물과 어쩔 수 없이 응답해야 함에 정말 마음 속 깊이 주님께 울부짖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3박 4일 일정을 마치고 나갈 때는 도망가고 싶어도 “예, 제가 여기 있습니다”라고 고백하고 응답할 것을 알았기에, 울면서 “왜 나를 이곳으로 부르셨는지, 결국 앞으로 이 일을 시키시려고 그 동안 나를 쉬게 하시고 아무 준비도 하지 못한 무방비 상태에서 내 아이를 그렇게 일찍 제 곁을 떠나 한국으로 보내게 하셨냐고”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일정 속에서 저는 가벼운 스폰지가 되어 주님께서 주시는 것을 다 흡수 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하루 일정을 마치고 감실 앞으로 달려 갔습니다. “도대체 왜 나를 이곳으로 부르셨는지 대답하시라고, 당신의 답을 듣기 전까지는 야곱이 야뽑강에서 씨름하였듯이 저도 동틀 때까지 이 감실 앞을 떠나지 않겠다”고 온 힘을 다하여 울면서 주님께 매달렸습니다.
그 때 제 마음에 평화가 밀려오면서 어리석은 저에게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아침 성체조배 시 이미 말씀해 주신 것으로 “네가 총애를 받는 사람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이셨습니다. 나를 총애 하시기에 이 곳으로 부르셨다는 답을 듣고도 그때까지는 제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세미나를 통하여 저는 신앙인으로써의 제 삶을 뒤 돌아 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제가 어릴 적 제 어머니와 친하게 지내시던 영이 어머니는 다섯 살인 저의 손을 잡고 교회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 분은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지만 제게는 하느님의 존재를 알게 해준 고마운 은인입니다.
성탄이 되면 노래와 성극 등 참 열심 했던 유년 시절이 있었고 교리교사가 되어 제가 어릴 적 받았던 그 신앙교육을 학생들에게 나눌 수 있었던 참다운 시간도 있었습니다.
인생의 진로로 방황할 때 남편을 만났고 아주 열심한 불교 신자인 시어머니와 시댁에서 함께 보내게 되었습니다. 일년 뒤 “다시 성당에 나가게 되면 열심한 신자가 되라”며 저희를 분가시켜 주신 어머니는 지금 어느 누구보다도 열심한 천주교 신앙인으로 살아 가고 계십니다.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언젠가 제가 주님 앞에 서게 된다면, “주님, 그래도 적지만 어머니를 비롯한 저희 가족 열명이 당신의 자녀가 되었습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1995년 저는 늦둥이로 둘째를 낳고 그 아이가 6개월이 되었을 때 몇 년간의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돌아가서 저는 병원이나 한의원을 가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앉아서 노는 아이를 보면 “저 애를 다 키워놓고 죽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에 눈물이 나왔고 그러던 중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살던 구역장의 방문으로 동갑내기인 새로운 영적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미사를 드리며 함께 모여 기도하였고, 저는 언제나 그들의 신앙생활을 보며 배워나갔습니다.
어느 날 거실 소파에 앉아 주님께 혼자 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주님, 저도 그들처럼 심령 기도하고 싶습니다. 한 번 해볼게요”라며 심령 기도를 시작하자 느낌으로 심령기도가 시작됨을 알게 되었고 주님은 아름다운 영가도 함께 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러던 중 그 친구들과 저의 신앙의 모델이었던 골롬바 형님 그리고 치유은사를 받은 봉사자로부터 기도를 받게 되었고 성령이 어떻게 나에게 오셔서 제 병을 치유시켜 주셨는지 그 성령의 느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건강을 되 찾고 큰 아이가 특목고를 입학하면서 유학 이야기가 나왔고 고심 끝에 우리는 다시 미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잠시 살러 오는 것과는 달리 아주 살러 오는 것에 저는 걱정과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곳에서의 첫 신앙생활은 황무지에 홀로 서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사심 없이 참 열심히 봉사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돌아 오는 것은 깊은 상처뿐이었고 믿고 싶지 않은 인간의 밑바닥을 보며 너무 많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나의 주님께서는 그 아픔을 통하여 당신과의 끈을 조금 더 당겨 주셨습니다.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움을 제게 주셨고 그것은 아주 커다란 주님의 은혜로움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자유로움을 느낄 때 저희는 보스톤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고 보스톤에서는 정말 조용히 살고 싶었기에 본당에서 활동하는 남편의 모든 것에 저는 제동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일이 다가오고 있음을 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이사온 지 수개월이 지난 후 큰 아이가 앞으로 본인은 한국에서 살 계획이라 우선 군대를 가겠다며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큰 아이는 성격도 좋고 공부도 늘 잘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릴 때 이 곳에서 학교를 잘 다녔었기에 미국의 학교 생활에 적응하기가 그렇게 힘이 들었는지 저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엄마로써 저의 어리석음 생각하면 지금도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그 아이가 제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high school 내내 매일 밤 잠들 때 내일 아침에는 눈이 안 떠지길 바랬다고, 일단은 군대에 가서 모든 것을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며 그 아이는 내 곁을 떠났습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제 곁을 떠난 그 아이가 제일 먼저 떠 올랐습니다. 사순절이 되어 십자가의 길을 하다 보면 예수님의 고통보다 그 예수님의 고통을 바라보며 견디는 성모님의 고통에 같은 엄마의 입장으로 제 가슴에 깊은 고통의 아픔으로 다가왔고 저는 눈물로 얼룩진 십자가의 길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와 어릴 때 함께 갔었던 성당을 찾아가 제 생전 처음으로 성모님께 간절히,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성모님, 당신도 엄마이고, 저도 엄마입니다. 당신도 아들이 있고 저도 아들이 있습니다. 당신의 고통에 비하면 저의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지만 저 너무 많이 아픕니다. 그 아이를 기억해 주시고 돌 보아 주십시오. 준비되지 않은 큰아들과 의 갑작스런 이별은 저를 너무나 힘들게 하였습니다.
기도 중에 “주님, 어떻게 하라고요? 엄마인 저더러 자식을 내려 놓으라는 것 인가요? 자식 보다 당신이 먼저라고, 자식보다 당신이 첫 번째라고 인간인 저에게 욕심을 부리시는 것인가요?”라며 저는 들고 있던 책을 벽을 향해 세게 집어 던졌습니다. 그리고 소리 내어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주님을 느꼈던 그 말씀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내가 너를 이렇게 사랑하는데 무엇을 걱정하느냐? 너를 온전히 나에게 바쳐라. 그러면 내가 너에게 모든 것을 채워주리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도 온전히 바치는 것에 미숙합니다. 이렇게 가르쳐 주시는 데도 넘어짐에 연속입니다.
아이는 이제 독립된 신앙인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주님께서 주신 선물을 다시 돌려드리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돌려 드렸다가, 내일은 안 된다고 떼를 쓰며 주님께 매달립니다.
그분께서는 저에게 모든 것을 내려놓게 하십니다. 저는 육신의 아픔을 통하여 주님을 만났고, 또 아이를 통해서 주님을 새롭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분은 저에게 진정한 통회를 가르쳐 주셨고 그 통회를 통하여 저에게 변화된 삶을, 어린 아이의 신앙에서 성숙된 신앙인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지난 해 성령대회에 처음 참석했을 때에는 제가 오늘 이 곳에서 저의 변화된 모습을 고백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주님을 향해 새롭게 가려고 했을 때, 주님은 저뿐만 아니라 저의 친구이자 신앙의 동반자인 남편을 비롯해 저의 가정을 한 차원 높게 성 가정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 봉사자 세미나에서 저는 주님께 처음으로 약속 드렸습니다. 저의 두 아이를 당신께 봉헌하며 제가 당신 앞에 가는 날까지 당신의 길을 따라 가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지난 달 저희 본당에서 있었던 성령세미나에서 주님과 약속했던 첫 번째 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파견미사 내내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주님, 이것이군요.. 영혼이 아프고, 영혼이 목마르고, 영혼이 메마른 이들을 위해 이 부족한 제가 당신의 도구로 쓰여지는 군요.” 이렇게 감사와 찬미와 영광의 미사를 드릴 때 주님은 저의 머리 끝에서 발 끝까지 손 마디 마디 마다 뜨겁게 성령으로 저를 감싸 안아주셨습니다.
그리고 어제 아침 대회장으로 떠나기 전 이른 아침 미사에서 이번 성령대회를 기점으로 이제 제가 아이로부터 자유로움을 갖게 해 달라고 주님께 기도했고, 앞으로 주님을 제 안에 첫 번째로 모실 수 있도록 저를 변화시켜 달라고 주님께 말씀 드렸습니다.
“무엇이든지 나의 이름으로 하여라, 그러면 그 모든 것이 나에게 찬미와 영광이 될 것이다. 네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한다. 믿고 따라라.”하고 말씀하신 나의 사랑이신 주님께, 또한 이 체험담을 두려움 없이 전할 수 있도록 이 말씀으로 저를 준비시켜 주신 성령님께 이 시간 찬미와 영광과 감사를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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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미 예수님
저의 작은 체험담을 이 곳에 올리도록 허락하신 주님께 찬미와 영광드립니다.